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크론병이 ‘유전되는 못된 병’으로 묘사되며 이슈가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해당 표현의 문제점과 함께 크론병의 원인과 증상, 유전성과의 관계, 치료 및 관리법을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정리했습니다.
'닥터 차정숙' 드라마 이슈
2023년 방영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흥미로운 전개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의료정보의 표현에서 결정적인 실책을 범하였습니다. 문제의 장면은 크론병을 앓고 있는 인물의 가족이 “이 병은 유전되는 못된 병”이라고 언급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발언은 해당 질환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환우들에게 정신적 상처를 남겼습니다.
크론병(Crohn's disease)은 염증성 장질환의 하나로, 증상이 만성적이고 재발을 반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환 자체도 부담이 큰데, 드라마에서처럼 잘못된 언급으로 인해 환자와 가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킬 수도 있습니다.
특히 '유전되는 못된 병'이라는 표현은 두 가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크론병은 유전병이 아니라 '다인자성 복합질환'입니다. 이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서, 유전자 변이로 인해 크론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질 수는 있어도 그로 인해 꼭 크론병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질환에 부정적인 의미를 덧씌우면, 환자를 사회적 편견 속에 두게 되고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대한장연구학회와 크론병 환우회 등 의료계와 당사자 커뮤니티는 즉각 반발했고, JTBC는 "의도치 않게 상처를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사과는 드라마 한 장면이 의료정보 전달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의료 콘텐츠가 엔터테인먼트로만 소비되기보다는 공공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 이번 이슈의 핵심입니다.
크론병의 위험 요소
크론병은 자가면역 기전이 작용하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으로, 소장 말단과 대장 부위에 병변이 주로 생기지만, 소화관 전체에 걸쳐 병변이 산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병변은 점막층을 넘어 장벽 전층에 침범하며, 궤양, 협착, 누공, 농양 등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이 질환의 발생 원인은 다인자적입니다. 주요 요인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면역계 이상: 선천적 면역반응의 과활성으로 인해 장내 정상균총에 대한 과도한 염증반응이 유발됨.
- 장내 미생물 변화(Dysbiosis): 특정 병원성 세균의 증식 또는 유익균 감소로 인한 면역교란.
- 환경적 요인: 서구화된 식습관, 항생제 과다사용, 흡연, 스트레스 등이 유병률 증가에 영향을 미침.
- 유전적 소인: NOD2, ATG16L1, IL23R 등의 변이가 크론병 발병률 증가와 연관됨.
실제로, NOD2 변이는 장내 세균에 대한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유전자로,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크론병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전자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크론병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발병에는 환경적 자극과 면역 반응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므로, 유전 요인은 위험 요소일 뿐, 절대적 조건은 아닙니다. 이는 고혈압이나 당뇨에서 가족력이 리스크로 작용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즉, 크론병은 유전병이 아니라 유전성 소인이 존재하는 다인성 복합질환입니다. 이 점을 오인하면 환자와 가족이 사회적으로 위축되거나 차별적 시선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도 질환을 숨기거나 치료를 미루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가지게 됩니다.
주요 증상과 궤양성 대장염과의 감별 포인트
크론병의 임상 증상은 병변의 위치, 범위, 염증의 심도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특히 비특이적인 증상 때문에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복통과 만성 설사입니다. 이 두 가지는 거의 모든 크론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며, 특히 식사 후 복통이나 야간 설사는 크론병을 의심할 수 있는 신호로 간주됩니다. 장점막의 손상으로 인한 출혈은 드물지만, 철결핍성 빈혈이나 체중 감소, 피로감이 동반될 수 있으며, 장 흡수기능 저하로 인해 지용성 비타민 및 단백질 부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크론병은 장 외 증상도 특징적입니다. 피부에서는 결절홍반, 구강 내 아프타성 궤양이 나타날 수 있고, 관절염, 척추염, 홍채염, 담관염 등 자가면역과 연관된 전신 증상도 동반될 수 있습니다. 항문 주위 병변인 치루, 항문 농양, 항문 협착 등은 특히 크론병에서 궤양성 대장염과 감별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UC)은 모두 염증성 장질환(IBD)에 속하지만, 해부학적 병변의 양상과 병리적 특성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 국한되어 병변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며, 점막과 점막하층에만 염증이 국한됩니다. 반면 크론병은 소장과 대장을 포함한 전 장관에 병변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며, 장벽 전층을 침범합니다. 또한 크론병은 병변이 연속적이지 않고 건너뛰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며, 육아종(granuloma) 등의 조직학적 소견이 진단에 도움을 줍니다. 이러한 차이를 기반으로, 내시경 검사와 조직 생검, 영상검사(MRE, CT enterography 등), 대변 칼프로텍틴 검사 등을 통해 감별 진단을 진행하게 됩니다. 두 질환 모두 자가면역 기전과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 핵심 병태생리로 작용하지만 치료 약제 선택과 질환 경과가 달라지므로 감별은 매우 중요합니다.
치료 목표는 장기적 관리 전략
크론병의 치료는 완치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염증의 활성기를 가능한 빠르게 억제하고, 관해를 유도한 뒤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집중됩니다. 이 질환은 재발을 반복하는 만성 경과를 가지므로, 장기적인 전략이 필수적입니다. 약물치료는 치료의 핵심으로, 보통 경증부터 중등도 환자에게는 5-ASA (5-aminosalicylic acid) 제제나 부신피질호르몬인 스테로이드가 사용됩니다. 관해 유도 후 면역조절제인 아자티오프린이나 6-MP(6-mercaptopurine)를 장기 유지요법으로 활용합니다. 중등도에서 중증으로 진행된 경우에는 항-TNFα 계열의 생물학적 제제(infliximab, adalimumab 등)가 투입되며, 최근에는 IL-12/23 억제제(ustekinumab), JAK 억제제(tofacitinib) 등 새로운 표적치료제도 환자 특성에 따라 사용됩니다. 생물학적 제제는 고비용과 감염 위험이 동반되므로 결핵·B형 간염 선별검사와 정기적 혈액검사가 필수입니다.
식이요법과 영양관리는 보조치료로써 중요합니다. 염증기에는 식욕 저하와 장흡수 장애로 인해 영양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고단백·고열량 식이를 권장하되, 증상 유발 음식은 개별적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장협착이 있는 환자의 경우 저잔사식(Low-residue diet)이 도움이 되며, 일부 환자에게는 경장영양(enteral nutrition)이 염증 완화에 효과적입니다. 여기서 저잔사식이라 함은 소화 후 대장에 남는 찌꺼기(잔사)를 최소화하는 식단으로, 음식을 부드럽게 익히거나 삶아서 소화를 돕는 조리법을 이용하거나 생채소나 껍질이 있는 재료 등을 피하고 부드러운 식재료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약물치료와 보존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인 장폐색, 누공, 농양 등이 발생하면 외과적 개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크론병의 수술은 대개 병변 부위 절제나 누공 폐쇄를 목적으로 하며, 치료보다는 증상 완화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병은 재발할 수 있으므로, 수술 후 유지치료와 면밀한 추적관찰이 필수입니다.
약사 코멘트
크론병은 복잡한 병태생리를 지닌 자가면역성 질환이며,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입니다. 그러나 꾸준한 치료와 관리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고, 사회적 지지가 큰 역할을 합니다. 드라마에서의 한 줄 대사는 그저 픽션일 수 있지만, 환자에게는 상처의 문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우리는 질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단어 하나하나에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유전되는 못된 병’이라는 표현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환자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오류입니다. 약사로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크론병은 잘 알고 관리해야 하는 병입니다. 약은 꾸준히 잘 복용해야 하며, 면역력 관리도 해야 하고 식단관리까지 들어가면 무엇보다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적절한 약물요법, 영양관리, 감염 예방, 심리적 지지까지 종합적으로 접근하여 충분히 삶의 질을 지키며 관리할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약사로서 드라마에 등장한 의학 정보를 해설하기 위해 작성된 콘텐츠이며, 의료 전문인의 진단이나 처방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