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는 주인공 호수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귀에 상처를 입은 후, 성인이 되어 갑작스럽게 청력을 잃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대화가 멀리서 들리듯 울려 퍼지고, 세상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그 순간은 많은 시청자에게 ‘돌발성 난청’이라는 질환의 현실적인 공포를 전했습니다. 돌발성 난청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청신경 질환으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청력이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는 위험한 병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드라마 속 장면을 계기로 돌발성 난청의 원인과 병태생리, 주요 증상과 진단 과정 그리고 치료와 복약지도의 실제를 약사 시점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돌발성 난청의 원인과 병태생리
돌발성 난청은 72시간 이내에 한쪽 귀의 청력이 갑자기 30dB 이상 떨어지는 급성 감각신경성 난청으로 정의됩니다. 그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의학적으로는 내이(달팽이관) 혈류 장애, 바이러스 감염, 자가면역 반응, 스트레스성 혈관 수축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특히 교통사고나 외상 이후 청신경이 약해진 상태에서 혈류가 순간적으로 차단되면, 청각세포가 산소와 포도당 공급을 받지 못해 손상될 수 있습니다. 이런 세포 손상은 몇 시간 만에도 비가역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치료가 우선적입니다.
드라마 속 호수의 사례처럼, 과거 귀 손상 병력이 있는 경우 내이의 미세혈관이 취약해 돌발성 난청에 쉽게 노출됩니다. 청신경은 재생이 거의 불가능한 신경이기 때문에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증상이 시작되면 즉시 이비인후과를 방문해 청력검사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병태생리적으로는 내이 혈류가 막히거나 바이러스에 의해 염증이 발생하면서 청각세포가 손상되고, 뇌로 향하는 전기신호 전달이 차단됩니다. 그 결과 환자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거나, 특정 주파수의 음이 들리지 않거나, 귀 안이 막힌 듯한 압박감을 느낍니다. 초기에는 이명이 함께 나타나고, 심한 경우 어지럼증과 구토가 동반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 귀의 문제가 아닌 신경 전달 체계의 급격한 붕괴로 볼 수 있습니다.
돌발성 난청은 체력과 연령에 상관없이 발생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20~40대 젊은 층에서도 스트레스, 불면, 이어폰 과사용으로 인한 내이 손상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방의 핵심은 '귀의 휴식'과 '혈류의 안정'입니다. 혈압이나 혈당이 높은 사람, 흡연자, 불규칙한 수면 습관이 있는 경우 발병 위험이 크게 높아집니다. 귀는 생각보다 섬세한 기관으로, 하루의 피로와 긴장이 쌓이는 가장 민감한 신체 부위입니다.
증상과 진단 과정
돌발성 난청의 초기 증상은 귀가 ‘먹먹하다’는 느낌에서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처음엔 감기나 비염으로 인한 일시적 이관 막힘이라고 생각하지만, 며칠 사이 청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소리가 왜곡되어 들립니다. 특히 한쪽 귀에서만 소리가 작게 들리거나, 삐- 하는 소리가 들리는 이명이 지속될 때는 반드시 병원 진료가 필요합니다. 드라마 속 호수가 대화를 듣지 못해 당황하던 장면은, 실제 환자들이 겪는 공황 상태와 유사합니다. 청력 저하와 함께 방향감각이 무너지고 어지럼증, 구토, 귓속 압박감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진단은 순음청력검사(Pure Tone Audiometry)로 시작하며, 어음청력검사, 고막운동성 검사, 이음향방사(OAE), 뇌간유발전위검사(ABR) 등을 통해 청신경 손상 여부를 확인합니다. 추가로 MRI를 시행해 청신경종양이나 뇌혈류 이상을 감별합니다. 내이의 혈류 장애나 염증성 원인이 확인되면, 즉시 스테로이드 치료가 시작됩니다. 진단 시점이 빠를수록 예후는 좋아지며, 7일 이내 치료 시 70% 이상 회복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돌발성 난청은 메니에르병, 전정신경염, 이관 기능 장애와 감별이 필요합니다. 메니에르병은 어지럼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청력 손실이 점진적인 반면, 돌발성 난청은 수시간 내 급격히 청력이 떨어집니다. 이 때문에 환자는 발병 직후 “귀가 갑자기 고장난 느낌”을 호소합니다. 또한 돌발성 난청은 양쪽보다 한쪽 귀에만 나타나는 경우가 90% 이상으로, 초기 증상 인지가 어렵기 때문에 정기적인 청력검사가 중요합니다. 의학적으로도 청력 손상은 단순 감각 저하가 아니라, 신경세포의 ‘침묵’입니다. 조기 개입만이 그 침묵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치료와 복약지도
돌발성 난청의 치료는 크게 약물치료, 순환 개선, 재활 관리로 나뉩니다. 가장 먼저 시행되는 것은 스테로이드 요법입니다. 프레드니솔론(Prednisolone) 또는 덱사메타손(Dexamethasone)을 고용량으로 투여하여 청신경 염증을 줄이고 부종을 완화합니다. 경우에 따라 고실 내 직접 주입(intratympanic injection)으로 약효를 극대화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혈류 개선제(Betahistine, Pentoxifylline) 투여로, 내이의 미세혈관 순환을 도와 청각세포 회복을 유도합니다.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될 경우 Acyclovir 등의 항바이러스제가 병용되기도 합니다.
약사로서의 복약지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스테로이드는 식후 복용이 권장되며, 장기 복용 시 위장장애·혈당상승·수면장애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약물 복용 시점과 용량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혈류 개선제는 일정한 시간대에 꾸준히 복용해야 하며, 복용 중 카페인·니코틴 섭취는 혈관 수축을 유발해 약효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환자에게는 “소리를 되찾는 과정에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안내해야 합니다. 약 복용을 2주 이내 중단하거나, 증상이 나아졌다고 자의적으로 끊는 경우 재발률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생활관리 측면에서는 충분한 수면과 스트레스 조절이 가장 중요합니다. 과도한 이어폰 사용, 큰 소리 노출, 잦은 카페인 섭취는 내이의 혈류를 악화시키므로 피해야 합니다. 균형 잡힌 영양 섭취와 가벼운 유산소 운동은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는 청신경 재생을 목표로 한 줄기세포 연구도 활발히 진행 중이며, 향후 치료 예후가 점점 개선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치료의 핵심은 ‘빠른 대처’와 ‘복약 순응도’입니다. 귀의 침묵을 되돌리는 유일한 방법은 꾸준함입니다.
약사 코멘트
돌발성 난청은 갑자기 찾아오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소리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약사로서 환자분들께 가장 강조드리고 싶은 점은 약 복용의 ‘리듬’을 지키는 것입니다. 스테로이드는 일정 시간대에, 혈류 개선제는 꾸준히 복용해야 치료 효과가 유지됩니다. 또한 복용 중 위장장애나 어지럼증이 생긴다면 즉시 의료진과 상담해야 합니다. 자가 판단으로 복용을 중단하는 것은 회복의 기회를 잃는 일입니다. 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기관입니다. 그러나 치료와 관리, 그리고 인내가 함께라면 충분히 소리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호수가 세상의 소리를 다시 들으며 미소를 되찾았던 장면처럼, 현실의 환자분들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돌발성 난청의 치료는 의학적 접근과 더불어 심리적 안정이 함께해야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조기 진단, 꾸준한 복약, 그리고 생활습관의 조화가 바로 청신경 회복의 3요소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도 혹시 귀가 먹먹하거나 이명이 느껴진다면, 그 신호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조기 치료는 단순히 청력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소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 본 글은 약사로서 드라마에 등장한 의학 정보를 해설하기 위해 작성된 콘텐츠이며, 의료 전문인의 진단이나 처방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이 의심될 경우 반드시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