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원경'에서 조선 왕비가 시달린 병, 바로 말라리아(학질)입니다. 원경왕후는 학질이라 불린 열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하게 됩니다. 이 병은 바로 현대에 말라리아로 알려진 질환이며, 모기 한 마리의 침입만으로도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항말라리아제가 개발되어 조기에 치료할 수 있지만, DMZ 인접 지역에 거주하거나 복무하는 군 장병 그리고 동남아나 아프리카로 여행을 계획 중인 이들에게는 여전히 대비가 필수인 질병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조선시대 '학질'과 오늘날 말라리아의 차이를 역사와 과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국내 감염 현황부터 해외 여행자들을 위한 주요 항말라리아제 및 예방적 복용법까지 실질적인 정보를 약사의 시선에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질병의 역사적 진화
드라마 '원경'에서 조선 왕비는 극심한 고열과 오한을 동반하는 학질로 생명이 위태로워집니다. 당시 의학적 한계로 인해 병명을 명확히 진단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질환을 '말라리아(Malaria)'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말라리아는 Plasmodium이라는 기생충이 사람의 간과 적혈구를 감염시키는 전염병으로, 주로 말라리아모기(Anopheles)에 의해 전파됩니다.
조선시대에는 저지대 습지와 논농사, 위생환경 미흡 등으로 인해 모기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 결과 학질이 지역사회 전반에 만연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에는 증상을 해열하거나 땀을 내는 민간요법이 주요 치료 방법이었지만, 발열의 주기적 반복과 고열로 인해 생명을 잃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반면 현대 의학은 말라리아의 병태생리학적 기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생충은 먼저 간세포에 침투한 후 잠복기를 거쳐 혈중으로 나와 적혈구 내에서 증식하며, 이 과정에서 48~72시간마다 주기적인 발열 증상을 유발합니다. 말라리아는 단순히 열이 나는 병이 아니라, 미세혈관을 막아 장기 손상을 유발합니다. 심하면 뇌, 신장, 폐 등 주요 장기의 기능 부전을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감염병입니다. 조기에 진단하지 않으면 급속히 악화되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왕비가 앓았던 학질은 단순한 열병이 아닌, 당시 의료 수준의 한계로 인해 대응이 불가능했던 심각한 감염 질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는 혈액도말 검사, 신속진단키트(RDT), PCR 검사 등을 통해 감염 여부와 기생충의 종류까지 구분할 수 있으며, 이 정보를 기반으로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류가 감염병과 싸우며 어떻게 의학적 진보를 이루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국내 말라리아 현실
우리나라는 한때 말라리아 근절 국가로 분류되었지만, 1993년 이후 DMZ 인접 지역인 파주, 연천, 철원 등에서 말라리아가 다시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말라리아는 재유행의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현재는 매년 400~700건 사이의 환자가 발생하며, 환자 대부분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 군 복무 중인 장병이나 거주 주민들입니다. 주로 삼일열 말라리아(Plasmodium vivax)에 의한 감염으로, 비교적 치명률은 낮지만 잠복기가 길고 재발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장병의 경우 야간 근무, 숲 속 초소 근무 등으로 인해 모기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 선제적 예방 조치가 필수입니다.
국방부와 질병관리청은 이에 대응해 군부대 및 지역사회에 말라리아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감염 지역 병원에는 신속 진단 및 치료 체계를 구축해 조기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또한 감염자 발생 시 역학조사를 통해 주변에 전파되지 않도록 모니터링 체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률은 매우 낮지만, 조기 진단이 늦어질 경우 고열, 빈혈, 황달, 간 비대, 비장 비대, 심할 경우 뇌말라리아까지 진행할 수 있으므로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말라리아 환자는 해외여행 이력이 없고 국내 접경지역 거주자 또는 군 복무 중 감염이므로, 말라리아 의심 증상이 있는 경우 반드시 여행력이나 거주지를 의료진에게 정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고열과 발한, 오한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경우에는 말라리아 감염을 고려해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하며, 증상이 사라졌다고 방심하지 말고 치료를 완료하는 것이 재발 예방에 핵심입니다. 지역 보건소 및 감염병 지정병원에서는 필요시 역학조사 및 투약을 지원합니다.
해외 위험지역 및 예방 전략
말라리아는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매년 2억 건 이상의 감염이 발생하는 질환으로, 주로 아프리카 대륙과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남미 등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으로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출국 전부터 예방을 준비해야 하며, 단순히 기피제를 뿌리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질병관리청과 WHO는 고위험 지역을 방문할 경우 항말라리아제 복용을 권장하며, 여행지에 따라 적절한 약물 선택이 중요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항말라리아제는 대표적으로 아토바쿠온/프로구아닐(말라론정), 메프로퀸(Mefloquine), 독시사이클린이 있습니다. 여행 일정 및 개인 건강 상태에 따라 복용법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말라론은 출국 하루 전부터 귀국 후 7일까지 매일 복용해야 하며, 메프로퀸은 출국 1~2주 전부터 시작해 주 1회 복용 후 귀국 4주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독시사이클린은 매일 복용하되, 위장 장애와 햇빛 민감 반응이 있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추가로 프리마퀸은 간기생충 제거와 재발 방지용으로 쓰이며, 유전적으로 G6PD 결핍 여부를 사전에 검사해야 안전합니다.
현재 말라리아 백신은 RTS, S(모스키릭스)와 R21 등 일부가 개발되어 있지만 이는 아프리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예방 목적이며, 국내에는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예방약 복용과 개인 방어가 최선의 방법입니다.
야외 활동 시 긴 옷 착용, 모기장 사용, 디트(DEET: 디에틸톨루아미드) 성분의 기피제 활용, 모기 활동 시간인 일몰 전후를 회피하는 등도 중요합니다. 귀국 후에도 1개월 정도는 발열 등 증상 여부를 관찰하고, 의심 증상 발생 시 병원 진료를 즉시 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약사 코멘트
과거에는 '학질'이라 불리던 말라리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감염병입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군 장병과 접경지역 주민들, 그리고 열대 지역으로 여행을 계획 중인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입니다. 아직 국내에 백신은 없지만, 예방약 복용과 조기 대응만으로도 충분히 관리 가능한 질환입니다. 출국 전 전문가 상담을 통해 적절한 항말라리아제를 준비하고, 증상이 의심되면 지체 없이 병원을 찾는 것이 안전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말라리아는 예방이 치료보다 훨씬 효과적인 질환임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약사로서 드라마에 등장한 의학 정보를 해설하기 위해 작성된 콘텐츠이며, 의료 전문인의 진단이나 처방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