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속에서의 아름다운 순간이 한순간 비극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 우리는 드라마 속 한 장면을 통해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애순의 엄마 광례가 바닷일을 하던 중 잠수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이 병의 위험성과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잠수병, 그것은 단지 다이버만의 질환이 아닙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잠수병의 원인과 증상, 치료법은 물론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지침까지 전문가 관점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잠수병의 원인
잠수병은 의학적으로 감압병(Decompression Sickness)이라고 하며, 고압 상태에 노출된 후 급격히 압력이 감소할 때 발생하는 생리학적 장애입니다. 주로 잠수사, 해군 장병, 스쿠버다이버, 해양 구조작업자 등 수중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며 고산지대 급상승 또는 항공기 비상 탈출과 같은 상황에서도 드물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질환의 핵심은 인체에 녹아 있던 질소와 같은 기체가 급격한 압력 변화로 인해 미세 기포로 변하면서 조직이나 혈관을 손상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대기압보다 높은 압력 하에서 인체는 호흡 기체 중 질소를 조직에 더 많이 용해시킵니다. 이 상태에서 천천히 상승하면 용해된 질소가 호흡을 통해 서서히 배출됩니다. 그러나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면 용해 질소가 혈관 내에서 갑작스럽게 기포화되어 혈류를 막고 이로 인해 다양한 전신 증상이 유발됩니다. 특히 관절, 중추신경계, 폐, 피부 등 질소 용해도가 높은 조직에서 심각한 손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잠수병은 단순히 ‘물속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압 속도와 깊이, 체내 질소 축적량, 수분 상태, 체온, 운동 강도, 이전 잠수 이력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합니다. 특히 숙련되지 않은 잠수 초보자나 급하게 상승하는 경우 또는 과음, 탈수, 피로 상태에서 잠수한 경우 발생 위험이 크게 증가합니다. 이처럼 잠수병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알아차리기 어렵고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조기 대응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감압병은 단순한 레저 활동 중 발생할 수 있는 작은 이상 증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며, 그 발생 원리와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정확한 예방 및 치료 지침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상과 진단
잠수병은 증상의 폭이 매우 넓고 개인차가 큰 질환입니다. 경미한 경우 단순한 근육통이나 피로감, 어지럼증 등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중증으로 진행되면 신경학적 손상이나 호흡곤란,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일반적으로 증상은 잠수 후 15분에서 수 시간 내에 나타나며, 간혹 24시간 이후 늦게 발생하는 지연형 사례도 보고된 바 있습니다. 때문에 잠수 직후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대표적인 증상은 관절통, 특히 어깨, 팔꿈치, 무릎, 고관절 등 대관절 부위의 통증입니다. 이는 기체 기포가 관절 내 혈류를 방해하거나 활액막을 자극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종종 단순 근육통과 혼동될 수 있습니다. 피부에 반점이나 발진이 나타나기도 하고, 간지러움이나 벌레가 기는 듯한 느낌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호흡곤란, 흉통, 마비, 균형감각 이상, 두통, 시야 흐림, 피로감, 오심 등의 증상이 보고됩니다. 보다 심각한 경우에는 신경계 손상이 동반됩니다. 척수로 혈류 공급이 차단되면서 감각저하, 하지 마비, 배뇨장애가 발생하거나 뇌혈류에 영향을 줄 경우 혼돈, 실어증, 기억장애, 심지어 의식 소실까지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폐혈관에 기포가 쌓일 경우 "폐 잠수병"이라 하며, 이는 기침, 흉통, 청색증, 급성 호흡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응급 상황입니다.
진단은 환자의 잠수 이력, 증상 발생 시점, 증상의 종류 등을 종합해 이루어지며, 명확한 진단을 위해 영상의학적 검사(MRI, CT)가 활용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추신경계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 척수 MRI에서 병변이 확인될 수 있고, 중증 감압병이 의심될 경우엔 고압산소치료 전 전문의의 평가가 필수입니다. 환자의 임상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조치하지 않으면, 회복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기 때문에 증상이 의심되는 즉시 전문 의료기관에 내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와 예방
잠수병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은 고압산소치료(Hyperbaric Oxygen Therapy, HBOT)입니다. 이는 환자를 특수한 고압 챔버에 넣고 100% 산소를 고기압 상태에서 흡입하게 하는 방식으로, 기포를 작게 줄이고 조직의 산소 공급을 극대화시켜 손상된 조직 회복을 도와주는 치료입니다. 또한 기체 기포를 빠르게 흡수·제거하여 혈류를 정상화하고, 추가적인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데에도 효과적입니다. 고압산소치료는 환자의 증상에 따라 치료 프로토콜이 달라집니다. 단 1회 치료로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수회 반복 치료가 필요한 사례도 많습니다. 특히 신경학적 손상이 심하거나 발병 후 시간이 경과한 경우에는 치료 회차와 시간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치료 효과는 발병 후 빠른 시간 내에 시작될수록 더 높아지므로 골든타임은 보통 6시간 이내로 간주됩니다. 이 시간을 놓칠 경우 조직 손상이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질환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잠수 전 충분한 수분 섭취
- 무리한 하강 및 상승 금지
- 감압표(Dive Table) 또는 다이브 컴퓨터를 이용한 체계적 상승 계획
- 잠수 후 12~24시간 내 비행기 탑승 금지
- 음주 후 잠수 금지
- 잠수 중 강도 높은 운동 자제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을 즐기는 일반인뿐 아니라 잠수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도 방심하지 말고 반드시 이러한 수칙을 지켜야 합니다. 증상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자가 판단하지 말고 바로 고압산소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잠수병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다이빙 안전관리사 자격 제도도 마련되어 점차 관련 안전 수준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약사 코멘트
잠수병은 우리가 흔히 접하기 힘든 질환이지만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초기 증상이 단순 근육통이나 피로감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방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약사로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위에서 언급한 증상들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증상이 의심되면 바로 병원으로 내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압병이 발생했을 때 일반적인 진통제나 휴식으로 증상을 견디기보다는 고압산소치료를 포함한 전문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다이빙 활동을 앞두고 있다면, 영양상태나 수분 섭취 상태를 철저히 점검하고 커피나 알코올처럼 이뇨작용이 강한 음료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시간 다이빙을 계획 중이라면 다이브 컴퓨터 사용과 더불어 신체 컨디션 유지와 응급 상황 시 대처 방법에 대한 사전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잠수병은 충분히 예방 가능한 질환입니다. 다이빙의 즐거움이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지 않도록 조금 더 신중한 접근과 안전수칙 준수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건강은 물속에서의 한순간 판단에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약사로서 드라마에 등장한 의학 정보를 해설하기 위해 작성된 콘텐츠이며, 의료 전문인의 진단이나 처방을 대체하지 않습니다.